신라왕궁이 있는 왕경 월성지구
등재 시기: 2000년 12월
등재 이유:1. 경주는 천 년 이상 신라의 수도로 자리를 지켰던 역사도시
2. 월성은 한국 건축물의 발달에 있어 중요한 유적을 보유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대, 첨성대
월성지구를 돌아보는 일반적인 코스는 대릉원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주차장에서 길을 건너면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를 알리는 기념비가 보인다. 이곳에서 월성지구가 시작된다. 잔디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은 첨성대다.
첨성대 국보 제31호:신라 선덕여왕 때에 축조한 첨성대는 현존하는 천문대 중 동양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1400여 년이라는 웬 세월에도 콜라병처럼 아름다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천년 신라의 중심지 월성,
첨성대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나무가 우거진 숲이 월성이다. 월성은 왕궁 주위를 감싸 안은 성인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나무가 자라고 숲을 이뤄 성의 모습은 찾기 보기 힘들고 무성한 숲이 눈에 잘 띌 뿐이다.
월성은 신라의 두 번째 궁궐이다. 파사왕 22년에 축조되어 멸망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성모양이 반달 같다 하여 반월성이라 부르기도 하고, 왕이 계신 곳이라 재성이라고도 한다.
경주가 신라 천년의 수도로 제자리를 지켜왔다면, 왕궁인 월성은 경주의 핵심으로 정치 중심지였다.
신라 조경예술의 극치 , 임해전지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외국의 사신이나 국가이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못 가운데 세 개의 섬을 두고 북. 동쪽으로 12 봉우리의 산을 만들었다. 연못은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뤄 어느 곳에서 모더라도 전체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했다.
계림 사적 제19호
경주 김 씨 시조인 김일지의 탄생설화가 얽힌 곳이다. 본래 해가 제일 처음 비추는 숲이라 해서 ‘시림’이라 불렸다. 김알지가 태어나고 후손이 신라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계림이라 부르게 되었다. 버드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 수백 년 이상 된 나무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데, 특히 야간에 조명이 더해지면 숲의 모습이 아주 그윽해 보인다.
내물왕릉 사적 제188호 : 월성지구 안 고분 중 유일하게 주인이 밝혀져 이름을 얻었다. 봉토 밑둘레에 자연석으로 둘레석을 돌렸고 무덤을 둘러싸고 있던 담장터 흔적이 보인다. 내물왕 당시 신라무덤은 거대한 규모의 돌무지 덧널무덤이지만, 내물왕릉은 규모가 작고 둘레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굴식 돌방무덤으로 추정된다. 황남대총을 내물왕릉으로 보기도 하지만, 삼국유사에 첨성대 남서쪽에 있다는 기록이 지금의 위치와 일치한다.
석빙고 보물 제66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얼음창고로 규모나 기법면에서 뛰어난 걸작이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이 경사져 배수가 되도록 했다. 반원형 천장에는 3곳의 환기통을 두었다. 석빙고 옆에 세워진 석비와 입구 이맛돌에 새겨진 기록으로 조선 영조 14년 나무로 만든 빙고를 돌로 축조했다는 사실과 4년 후에 현 위치로 옮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월성 사적 제16호: 천년의 역사 동안 경주가 신라의 중심지였다면, 왕의 궁궐이 있던 월성은 경주의 핵심이었다. 신라의 두 번째 궁궐로 석탈해 때부터 멸망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첨성대에서 바라보면 낮은 언덕처럼 보이나 자연적인 언덕이 아니라 구릉을 깎아 돌과 흙을 섞어 쌓았다. 하늘에서 보면 반달 모양을 닮아 반월성이라고도 하고, 왕이 계신 성이라 해서 재성이라고도 부른다.
경주를 방어하는 동쪽 요새 명활성 (0) | 2022.09.07 |
---|---|
신라 고분의 집합소 대능원지구 (0) | 2022.09.06 |
신라인의 불심이 표현된 불국토 (0) | 2022.09.05 |
세계 최대의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 유적 (0) | 2022.09.04 |
정조의 효심이 만들어낸 세계유산 수원화성 (0) | 2022.09.03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