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방어하는 동쪽 요새 명활성
등재시기 : 2000년12월
등재이유: 신라의 축성술 연구에 귀중한 자료,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지구
명활성은 명활산 골짜기를 감싸고 있는 포곡형 산성이다. 비록 발굴을 통해 복원한 성벽 구간은 50m 남짓이나 본래 토성 약 5km, 석성 약 4.5km나 되는 엄청난 길이의 성이다. 제18대 실성왕4년 명활성에 침입한 왜적을 물리쳤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쌓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을 쌓은 방식도 토성과 석성이 섞여 있는 것으로 처음에는 흙으로 성을 쌓았다가 후대에 돌로 쌓았다. 돌로 성을 쌓을때도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해 신라 초기의 산성임을 말해준다. 성벽은 바깥쪽만 돌로 벽을 만들어 경사가 급하고 안쪽은 흙과 돌을 다져서 밋밋하게 쌓아 올렸다. 이렇게 쌓는 것을 내탁법이라고 한다.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산성은 대부분 내탁법을 사용했다. 내탁법의 산성이 적으로부터 성을 방어하기 편리해서다. 반면 우리가 흔하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성벽의 안과 밖을 모두 수직에 가까운 벽으로 쌓는 것을 협축법이라 한다. 명활성이 경주를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이며, 중요한 장소였음을 알려주는 사례는 역사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삼국사기)직관지에는 명활전이라는 것이 보이는데, 이는 명활성을 관장하는 관청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명활성이 중요했음을 알려주는 단서다. 명활성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으로 ‘비담의 난’을 꼽을 수 있다. 비담은 2009년 방영한 tv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인물이다. 드라마에서는 진지왕과 미실 간의 사생아로 등장했다. 그러나 그의 출생연도, 부모 등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다만 삼국사기에 선덕여왕 14년에 화백회의 수장인 상대동에 올랐으며, 647년 선덕여왕을 폐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10일 만에 진압당해 구족이 멸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반란의 이면에는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왕실과 자신들의 위치를 불안하게 여긴 귀족 간 힘의 논리가 작용했다.
Tips.산성의 형식
산성은 입지조건과 지형 선택 기준에 따라 테뫼식과 포곡형으로 구분한다.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정상 주위에 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축조한 산성을 테뫼식이라 한다. 보통 규모가 작은 산성에 사용된다. 산성 안에 넓은 계곡을 포함하고, 주위에 산릉에 따라 성을 쌓은 것을 포곡형이라 한다. 성의 길이가 2000m내외지만 6000m이상의 대형 산성도 적지 않다.
가볼 만한 곳 경주
국립경주박물관: 경주를 여행할 때 가장 먼저 방문해야 하는 곳이 국립경주박물관이다. 도시 정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유물과 유적이 넘쳐나지만, 박물관에서 신라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얻어야 훨씬 유익한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종 무열왕릉 : 태종 무열왕은 본명이 김춘추로 탁월한 정치력과 뛰어난 외교술로 당나라 왕 연합하여 삼국을 통일하는 대업의 기반을 닦았다. 특히 김유신과는 막역한 친구 사이로, 김유신의 누이동생을 아내로 맞아 들었다. 그의 무덤은 선도산 자락의 송림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김유신묘:김유신은 가야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12대손으로 진천에서 태어났다. 가야가 멸망하고 신라로 건너와 15세에 화랑이 되어 고구려와 백제의 싸움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 그 후 태종 무열왕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태종 무열왕은 그의 업적을 치하해 태대각간의 작위를 주었으며 흥덕왕은 김유신이 79세로 죽자 흥무왕으로 추봉 하였다. 김유신묘는 경주 고속버스 터미널 옆을 흐르는 서천을 건너 우측으로 흥무로를 따라가면 나온다.
최씨고택: 경주‘최 부잣집’으로 더욱 유명하다. 최씨 집안은 조선 중기 무렵에 이곳에 정착했는데 300년동안 10대 만석꾼의 집으로 조선에서도 내노라하는 부잣집이었다. 또한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한 가문으로 부와 명예를 모두 갖춘 명문가이다. 최부잣집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주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이다. 최 씨 집안에 빚은 교동법주는 주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본래 최 부잣집의 터는 원효대사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은 요석공주가 살았던 요석궁터였다고 한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경주 ic를 나와 직진하면 오릉 사거리다. 우회전하면 서남산의 중심 삼릉까지 5분 거리다. 서출지, 칠불암이 있는 동남 산은 오릉 사거리에서 보문단지 방향으로 직진하다 7번 국도와 만나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한다.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국립경주박물관 임해전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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